2020. 12. 28. 21:12ㆍ에세이
학생 시절의 추억은 열 손가락이 남아 돌 정도로 별로 없다. 특히나 초등학교 시절은 암흑 그 자체이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시절이다. 중학교는 그나마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추억이 있다. 학교 근처에서 하이에나처럼 떼거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한량들에게 걸려서 얻어맞고, 2천 원을 뜯긴 추억 외에는 희끄무리하다.
당시 2천 원이면 떡볶이를 1.5인분이나 2인분 정도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떼거지들이 얼마나 배고프고, 절박했으면 때리면서까지 2천 원에 1원이라도 더 뜯기 위해서 '1원에 한대'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필사적으로 강제 몸수색을 했다. 그날 이후로는 그 길로 가지도 않고, 다른 떼거지들이 맞은편에서 오면 살 것도 없지만, 슈퍼마켓이나 문방구(문구점), 서점에 들어가서 사장님과 뻘쭘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고등학교는 지역에서 가까운 학교에 선정되거나, 신청해서 들어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대입 시험처럼 고입 시험을 봐야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도 재수해서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중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다. 교사는 야간 고등학교나 실업계 고등학교를 적극 추천했다. 야간 고등학교는 그야말로 떼거지들의 소굴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재수를 하거나 고등학교를 포기할 망정 거기는 싫었다. 필사적으로 2주 동안 공부에 매진했다. 내 생애 획일적인 공부를 가장 많이 한 2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다행히 주간 일반고에 합격했다.
고등학교는 그나마 추억이라는 게 조금은 남아 있다. 중학교 3년 동안은 놀거나, 방바닥에 눌어붙어 있어서 공부라는 것은 딴 세상에만 존재하는 거였다. 고등학생 때에도 공부는 딴 세상 거고, 여러 가지 취미를 접해볼 수 있는 시기였다. 읽어보기에도 민망한 시를 써보고, 안 본 눈을 사고 싶은 만화를 그려 보고, 10m 밖에서만 봐야 하는 유화를 그려보고, 기름칠을 전혀 하지 않은 깡통 로봇이 추는 듯 한 몸치로 춤을 배워보고, 10분 열정을 위해 두꺼운 책부터 사서 프로그래밍을 배웠었다. 이외 기타도 쳐보고, 당구도 배워보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었다.
2학년 때의 일이다. 한창 만화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앞에서 뒤로 갈수록 아래로 경사가 생기는 수업시간에는 맨 뒷자리에서 책을 세워놓고 오로지 그림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자고, 점심시간에도 자고, 수업시간에는 작업에 몰두하는 바쁜 시기였다. 동인지 마감이 별로 남지 않은 날에는 쉬는 시간이건 점심시간이건 작업에 몰두했다.
점심시간에 한창 작업을 하고 있던 중, 한 친구가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뜬금없이 '축하한다. 친구!!'라고 세상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여 줬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바쁘데 난데없이 실룩거리며 축하한다고 건네는 말에 살짝 짜증이 났다. '뭘 축하하는데?' 그림에 열중하면서 건조하게 대답했다. '드디어 네가 나를 이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 친구는 반에서 꼴찌를 기록하고 있었다. 점심 이후 담임에게 뒤쪽 허벅지를 핫하게 마사지받았다.
하이에나를 보면 피하는 게 상책이고, 엮이지 않는 게 현명하다.
한 번 빠지면 다른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몰두가 장점이지만, 쉽게 지치고 오래가지 않는 게 단점이다.
이런 장단점이 여러 가지 반짝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지금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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