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억 소환하기

2021. 1. 1. 08:52에세이

대입 학력고사의 마지막 세대였다. 지금의 수학능력시험과는 다르게 시험이 치러진다. 먼저 대학에 지원을 하고 그 대학에서 시험을 치른다. 전기 대학과 후기 대학으로 나뉘고 이후 전문대로 치른다. 학력고사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붙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많은 분들이 하향 지원을 감행했다. 덕분에 이미 하향인 사람들은 밀려 밀려 거의 포기 상태였다. 될 대로 되라식으로 이미 포기한 거 좋은 대학에 지원이라도 한번 해보자 식으로 찔러보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결과는 좋은 대학에서 미달이 나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달이기 때문에 지원한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합격을 했다. 수도권이나 지방대학은 오히려 경쟁률이 최대치를 찍었다. 나처럼 밀리고 밀려 어떻게든 예상 점수에 맞춰서 지원한 사람들은 쓴잔을 마셨다. 찔러본 사람들은 합격을 하고 어떻게든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대학은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재수를 생각해 보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처음 시도하는 대입시험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생각 끝에 부모님에게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를 제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과목을 1년 동안 다시 암기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결국 부모님의 설득에 재수를 하고 어렵게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모든 수업방식이 그냥 암기였다. 국어도 암기를 해야 하고, 영어는 필수 암기이고, 수학도 공식을 암기해야 하고, 역사와 화학, 생물 이런 것은 과목 자체가 그냥 암기였다. 왜 외워야 하는지 이유는 없다. 그냥 외우는 게 정답이었다. 

 

국어는 문학 작품을 시대순으로 나열해야 하고, 시는 무조건 외워야 하며, 문학 작가의 연대순도 그냥 외워야 했다. 시의 감성이나, 그 시대의 작가는 왜 그 작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배경.. 그딴 건 없다. 외우는 게 정답이다. 다른 전문가가 느끼는 감성마저도 외워야 한다.

 

영어는 그야말로 암기과목이다. 5 형식은 필수로 외워야 하고, 형식에 맞지 않는 예외는 뭐가 그렇게 많은지 형식이라는 게 필요 없을 정도이다. 단어도 외우기 힘든데 숙어까지 외워야 하고, 문장까지 통째로 외워야 한다는 게 당시에는 외국사람들은 이런 것을 다 외우고 대화를 한다는 게 신기했을 정도였다.

 

수학도 모든 수학책의 제왕인 수학의 정석을 달달 외워야 했다. 계산이 왜 그렇게 돼야 하는지 이유는 없다. 해답을 외우는 게 답이다. 해답에서 벗어나면 오답이다. 결과가 같아도 풀이 공식이 틀리면 오답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오답인 것이다.

 


 

'왜?'라는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는 교육이었다.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미 머리 좋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정리하고 해답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되고, 그냥 외우면 된다.

 

그 당시 교육에 대해서 상당히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고 1인가 2학년 때의 일이다. 수학 수업 시간에 선생이 문제를 풀면서 가르치는 중간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질문을 했다. 해답 풀이가 왜 그렇게 계산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명은 없다. 그냥 그렇게 계산된 것이다. 왜 그렇게 계산되는 건지 물어봐도 그렇게 계산되는 게 맞다는 답변만 왔다. 책 바퀴 돌 듯 질문과 답변이 반복됐다. 외우면 되는 게 그냥 답이었다. 

 

외우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변명이지만, 그래서 공부를 소홀히 했다. 왜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나왔고, 미적분은 왜 만들어졌는지(미적분이 뉴튼과 라이프니치에 의해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계기도 몇십 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알았다.), 한용훈의 님의 침묵은 왜 쓰였는지 그 시대상의 배경이 무엇인지,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만들어진 시대상은 어떻고 왜 불렸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고맙게도 몇십 년이 지난 후에 선을 넘는 녀석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도 외우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자격증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는다. 자격증은 내가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인증서 같은 것이지, 공부만 해서 따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왜'라는 질문을 먼저 하고, 스토리를 이해하면 암기가 굳이 필요할까 생각해본다.

 


 


background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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